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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롯데, 류현진의 완벽함에 피해자가 된 이재곤과 양종민




 연일 계속되고 있는 무더위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뜨거운 무엇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림을 느낄 수 있다. 
7월21일도 역시 대한민국은 하나의 가마솥이 된 마냥 뜨거운 햇살에 달궈져 있었고,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푹푹 찌는 더위에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무더위도 야구팬들의 열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롯데와 한화의 대결이 펼쳐진 대전한밭구장의 관중석은 국보급투수 류현진과 국내 최고 파워를 자랑하는 롯데타선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팬들로 매워지고 있었다.



< 7월 21일 경기 리뷰 >

 롯데의 팬들은 지난 주말 내렸던 장마비가 롯데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장원준의 부상 이탈로 선발투수가 3명(송승준, 사도스키, 이재곤)밖에 남지 않는 롯데의 입장에서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의 6경기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비로 인해서 경기수가 4경기로 줄었기 때문이었다.
비로 인해 두 경기가 취소된 토요일 저녁, 팬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도스키, 송승준은 승리 가능성이 높고, 이재곤도 역시 믿을만한 투구를 하니까.. 3승을 챙기고 땜방 선발이 한 경기를 잘해주면 되겠다'라고...

 하지만 사도스키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9회말 역전패를 당한 화요일 저녁, 롯데의 팬들은 절망감을 느껴야만했다. 
'승리 가능성이 높다'라고 확신했던 두 투수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롯데의 팬들은 21일의 경기에 마지막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이재곤이 류현진이라는 괴물 투수를 상대로 승리를 챙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두 선발 투수가 맞대결을 펼쳤고, 9회말 가르시아의 홈런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든 뒤 홍성흔의 끝내기 홈런이 나왔던 지난 6월 22일 경기를 롯데팬들은 기억하고 있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 있었다.

이재곤 (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 2회초, 승리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던 공격

 2회초 롯데의 공격은 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난 2006년에 이어 올 시즌에도 각각 투수와 타자부분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노리고 있는 두 선수의 대결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두 선수의 첫 대결은 이대호의 승리로 끝이 났다.
팬들의 관심과는 달리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두 선수의 대결은 시작 되었고,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는 1-0의 볼카운트에서 장타보다는 출루에 중점을 둔 스윙을 보이며 높은 공을 가볍게 잡아당겨 2, 3루 간을 빠지는 좌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이대호가 안타를 치며 출루에 성공한 롯데는 선취득점의 기회를 만들었다.
이대호의 안타 뒤 가르시아와 강민호가 각각 좌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정보명이 초구를 공략해 중전안타를 만들어 내며 선취득점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아쉽게도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류현진과의 상대 전적에서 좋지 않았던 전준우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팀의 소중했던 첫 득점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다.


 롯데는 2회초 공격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류현진과의 역대 전적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이대호가 안타를 뽑아냈고, 가르시아는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긴 했지만 컨택 위주의 스윙을 하는 듯 했기에 롯데팬으로 하여금 남은 공격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다.

이대호 (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 팬들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든 4~5회초 공격

 2회초의 공격으로 남은 이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롯데의 팬들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실망감을 느껴야했다.

 롯데는 4회초 공격에서 홍성흔이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고, 홍성흔은 류현진을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골라내며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했다.
홍성흔이 선두타자 출루에 성공하자 팬들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앞선 2회초 공격에서 봤던 이대호와 가르시아의 좋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이 기대하던 장면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을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를 펼치던 이대호가 유격수 땅볼 병살타를 기록하면서 아웃카운트는 순식간에 투 아웃으로 바뀌었고, 가르시아는 투수 옆을 스치는 안타성 타구를 만들어 냈지만 류현진의 호수비에 걸리며 아웃이 되고 말았다.

 롯데의 5회초 공격은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강민호가 중견수 앞 안타를 기록하며 경기 중 세 번째로 선두타자 출루에 성공했지만, 정보명이 강공을 펼치다 삼진 아웃 되었고, 원 아웃 전준우의 타석에서 런&히트 작전이 나왔지만 타자가 공을 맞추지 못해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이 되며 어렵게 만든 기회를 스스로 무너트렸다.


 롯데의 5회초 공격은 작전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정보명이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하긴 했지만, 0대0의 스코어로 치열한 투수전이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공보다는 보내기 번트를 지시하는 것이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전준우의 타석에서 나왔던 런&히트 작전도 역시 전준우가 직전 타석에서 류현진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과 강민호의 발이 빠르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금 아쉬운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정보명의 타석에서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다면, 전준우의 타석에서 무리하게 작전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필요할땐 작전을 쓰는것도...(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 5회말, 아쉽게 점수를 내준 이재곤

 야구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언 중에 하나는 '찬스 뒤에 위기'이다. 4회와 5회초의 공격에서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는 기회를 잡고도 득점을 올리지 못한 롯데는 5회말 수비에서 위기를 맞았다.

 소낙비라는 변수가 발생했음에도 4회말 수비까지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던 이재곤은 5회말 수비에서 선두타자 장성호를 상대로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다.

 선두타자를 출루시킨 한화는 롯데와는 달리 기본적인 작전야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한대화 감독은 장성호를 1루에 둔 상태에서 6번 타자 정원석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고 정원석은 보내기 번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1루 주자를 2루까지 진루시켰다.

 처음으로 2루에 주자를 내보낸 이재곤은 상대의 기습적인 공격에 당황하고 말았다.
전날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롯데팬들을 힘들게 했던 전현태는 큰 키로 인해 번트수비에 무리가 있는 이재곤을 상대로 초구에 기습번트를 시도했고, 타구는 포수와 투수의 애매한 위치에 떨어지며 내야안타가 되었다.

 기습번트 안타를 내준 이재곤에게는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원 아웃 주자 1, 3루 상황에서 신경현을 상대로 초구에 2루 땅볼을 유도해 냈지만 신경현의 방망이에 맞은 공이 먹힌 타구가 되는 불운이 따랐고, 타자 주자만 아웃시키며 3루 주자에게 홈플레이트를 내주고 말았다.


 5회말 한화의 득점은 작전에 의해 만들어진 점수였다.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하자 망설임 없이 작전을 펼치고 이것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장면은 5회초 롯데가 보여준 공격과 비교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류현진 (사진출처:KBO홈페이지)

- 9회초, 마지막 기회를 무산시킨 중심타선

 괴물투수 류현진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롯데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냈다.

 롯데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 선수는 문규현이었다.
전날 경기 9회말 수비에서 실책을 저지르며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던 문규현은 9회초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2-0의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지만 바깥쪽 변화구를 밀어 쳐 투수의 발을 맞고 굴절 되는 우전 안타를 뽑아냈다.

 아무리 작전을 펼치지 않는 로이스터 감독이지만 1대0으로 지고 있는 마지막 공격에서도 작전을 펼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안타를 치고 출루에 성공한 문규현을 양종민으로 교체시키고 김주찬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해 원 아웃 주자 2루로 만들었다.

 이번마저도 득점에 실패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조성환 - 홍성흔 - 이대호로 이어지는 타순은 동점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주자가 득점권에 나간 상태에서 첫 타석에 들어선 조성환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성환은 류현진의 초구를 공략해 중견수 앞 애매한 위치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 냈고, 2루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원 아웃 주자 1, 3루 상황, 조성환에 이어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들이 타점, 타율 랭킹에서 1~2위를 나눠 가지고 있는 홍성흔과 이대호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가 아무리 류현진이라도 동점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롯데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전광판의 득점 란을 '0'에서 '1'로 바꾸지 못했다.
믿었던 타점 1위 홍성흔이 2루수 파울 플라이로 아웃이 되었고, 이제 안타만이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이대호가 스텐딩 삼진을 당하며 경기는 마무리 되고 말았다.


 롯데팬들이 꿈꾸던 6월 22일 경기의 재연은 99%까지 완성이 되었지만 마지막 1%의 퍼즐에서 어긋나고 말았다.



< 양종민의 잘못인가? >

 9회초 마지막 득점기회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한 것을 양종민의 탓으로 돌리는 팬들이 의외로 많았다.
조성환의 안타에 양종민이 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양종민의 탓일까?
냉정하게 보면 조성환의 안타가 애매한 위치에 떨어졌기에 쉽게 스타트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후의 타자들이 타점 랭킹과 타격 랭킹 1~2위인 홍성흔과 이대호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상황을 다르게 놓고 생각해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무리한 홈 쇄도로 경기를 망쳤다고 황성용과 박계원 코치를 욕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상황이 같은 순 없지만, 만약 양종민이 홈으로 돌아오다 아웃이라도 되었거나, 혹여 조성환의 안타가 아웃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타자들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양종민과 박계원의 플레이는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상의 플레이였다.

 만약 마지막 공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양종민과 박계원 코치가 아닌 홍성흔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답답한 심정에 팀의 간판선수는 비판하지 못하고 엄한 선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류현진은 정말 최고의 투수이다 >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이 보여준 투구는 정말 예술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특히 9회초 원 아웃 주자 1, 3루 상황에서 홍성흔을 2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낸 뒤, 이대호를 스텐딩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은 그가 왜 대한민국 No. 1 투수인지를 보였다.

※ 솔직히 롯데팬의 입장에서는 이대호가 삼진을 당했던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한화의 팬들은 류현진이 좌투수란 점과 공의 궤적을 이유로 들며 스트라이크를 잡아줘도 무방한 공이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공은 경기 내내 잡아주지 않던 공(이 부분은 한화 팬들도 수긍하시는 부분으로 알고 있습니다.)이었음을 생각한다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류현진은 경기 내내 완벽한 공을 던졌고, 자신감 가득한 그의 공은 매력적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류현진의 호투는 롯데팬인 나조차도 "대단하다"라는 말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 이재곤의 호투 >

 롯데의 패배보다 더욱 안타까웠던 부분은 이재곤의 호투가 류현진의 투구로 인해 묻혔다는 것이다.

 이재곤은 21일 경기에서 국보급투수 류현진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투구를 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야구팬들에게 칭찬받을만한 승부를 펼쳤다.

 그의 호투는 투구 내용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재곤은 7 2/3이닝 동안 93개의 공을 던지는 효율적인 투구를 했고, 6개의 피안타를 맞으며 1자책점만을 기록했다. 여기에 사사구는 단 1개만을 내줬다.

류현진과 이재곤의 7월 21일 투구내용 (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그리고 이재곤의 호투가 더욱 칭찬받아야하는 이유는 류현진에 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뛰어난 투구를 했다는 것이다.
21일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우천으로 인한 경기 중단이 두 번 있었고, 두 번 모두 이재곤이 마운드에 있었던 한화의 공격시간이었다.



 경기를 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경기에서는
굳이 누군가를 표적 삼으며 패배의 원흉으로 몰기보다는 그 속에서 뛰어난 경기를 보였던 선수를 칭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