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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롯데, 김주찬과 이대형의 도루 싸움, 93년 전준호와 이종범을 떠올리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추석연휴도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

지난주 주말부터 긴 휴식을 가져온 친구들 입에서는 "눈 몇 번 감았다 뜨니 벌써 추석이 끝났다."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번 추석이 아주 길게만 느껴지고 있다. 추석연휴를 홀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어느 CF에서의 문구처럼 '나는 자유인이다.'를 외치고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번 추석만큼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입장이 되었고, 처음에는 혼자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루함이 엄습하기 시작했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게 되자 홀로 집을 지키고 있겠다던 계획이 큰 착오였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 김주찬과 이대형의 도루왕 전쟁, 전준호와 이종범을 뛰어넘길 >

 지루한 마음에 게임을 하려고 PC방에도 들렀지만 1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서 하는 경우가 아니면 뭐든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다.

 이렇게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롯데의 경기마저 없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환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롯데가 아닌 다른 팀들의 경기를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이날 경기 중 내가 지켜봤던 경기는 LG와 넥센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 펼쳐진 목동 경기였다.
원래라면 롯데의 포스트 시즌 경쟁상대가 될 두산과 SK가 맞붙는 잠실경기에 더 큰 관심을 뒀어야 했지만, 이 두 팀의 대결은 이미 더블해더 1차전 경기가 끝나고 더블해더 2차전 경기가 시작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그 흥미가 줄어 있는 상황이었다.

김주찬 (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 도루 3개를 추가한 이대형

 LG와 넥센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LG의 이대형이 1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볼넷을 얻어낸 뒤 도루를 성공시킨 것이다.
롯데팬으로 김주찬이 생에 첫 도루왕을 차지하길 바리는 입장에서 김주찬에 이어 도루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대형의 도루 성공은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경기 전까지 도루 개수에서 4개 차이로 김주찬에 이어 도루 2위를 달리고 있던 이대형은 이 경기에서 도루왕에 대한 욕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 3년간 이어왔던 도루왕의 타이틀을 내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대형은 1회초공격에서 볼넷으로 출루하고 2루 도루를 성공시켰지만, 곧바로 이어진 3루 도루 시도에서는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다.
단 한 번의 타석으로 두 번의 도루를 시도하였고, 1개의 도루 성공과 1개의 도루 실패를 맛본 것이다.

 1회의 공격에서 1개의 도루를 추가시키며 김주찬과의 차이를 줄인 이대형은 계속 이어진 경기에서도 적극적인 도루시도를 했고, 또 그것을 성공시켰다.
5회초 공격에서 안타를 치며 출루하였음에도 1대 1의 스코어 때문인지 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던 이대형은 양 팀의 스코어가 2대 1로 벌어진 상태였던 7회초 공격에서 원 아웃 이후 중전안타를 치고 출루한 뒤 2루 도루를 시도해 성공시켰고, 양 팀의 점수가 4대 1의 스코어로 더 벌어진 8회초 공격에서는 황선일을 2루에 둔 상황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뒤 이중 도루를 시도하며 경기 세 번째 도루를 성공시켰다.

김주찬 3루 도루 성공모습(사진출처:롯데자이언츠홈피)

- 도루왕은 누구 발에?

 9월 22일 경기에서 이대형이 3개의 도루를 추가함으로써 김주찬과 이대형의 도루 개수를 1개의 차이만을 유지하게 되었고, 얼마 전까지 김주찬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던 도루왕 경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두 선수의 도루왕 싸움을 단순 계산법으로 생각한다면 김주찬의 아주 근소한 우세를 점칠 수 있다.
131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6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기에 그는 게임당 0.466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것이 되기 때문에 시즌 전체게임 133경기를 모두 소화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총 61.93개라는 수치가 나오게 되므로, 게임당 0.465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이대형의 61.86보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 상태를 봤을 때 이런 수치는 무의미하다.
최근 두 선수의 경쟁을 보고 있으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도루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경기에서 두 선수가 얼마나 높은 출루율을 보이느냐가 관건이 되는데, 만약 두 선수가 같은 출루율을 기록한다면 아직은 2위에 머물고 있는 이대형이 좀 더 도루왕에 가까이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대형 2루 도루 성공모습 (사진출처:LG트윈스홈피)

- 93년, 전준호와 이종범의 도루왕 싸움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했던 도루왕 싸움으로 기억되고 있는 시즌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아마도 전준호와 이종범이 시즌 마지막까지 도루왕싸움을 벌였던 93시즌을 언급하게 될 것이다.

 롯데의 전준호와 해태의 이종범은 같은 1번 타자며 도루왕을 노렸던 선수들이지만, 두 선수의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전준호의 경우 홈런과 같은 장타보다는 컨택을 위주로 하는 안타와 볼넷에 중점을 둔 전형적인 1번 타자였지만, 이종범은 16개(당시 홈런 3위 장종훈의 홈런 개수가 17개였다.)나 되는 홈런을 포함하여 133개(93년 최다 안타 개수는 147개였다.)의 안타를 기록하는 등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1번 타자로 보기에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며 장타력을 갖춘 3번 타자에 가까운 선수였다.

이종범 (사진출처:KIA타이거즈홈피)

 이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선수였지만, 공통점도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빠른 발과 도루에 대한 센스였다.

 91년 데뷔하여 데뷔 첫해부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며 팀의 1번 타자로 자리 잡고 있던 프로 3년 차 전준호와 이제 막 데뷔하여 프로야구 첫 시즌을 경험하고 있던 이종범 두 젊은 선수들의 도루왕 싸움은 당시의 모든 야구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두 선수의 도루왕에 대한 접근은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두 선수는 다른 스타일의 공격성향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종범이 뛰어난 팀 성적 등을 이유로 많은 타석에 들어서며 많은 안타를 기록해 도루의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면 상대적으로 타석의 기회가 많이 부족했으며(전준호 120경기 465타석, 이종범 126경기 525타석) 안타의 갯수가 작았던 전준호는 0.363의 높은 출루율로 이종범과의 차이를 극복했다.

 시즌내내 치열하게 진행되던 두 선수의 도루 경쟁은 89년 김일권이 기록하였던 시즌 62개의 도루기록을 훌쩍 넘어서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전준호가 75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73개의 도루를 기록하였던 이종범을 누르며 도루왕을 차지하였다.

통산 550도루를 성공한 전준호의 549호 도루 장면 (사진출처:넥센히어로즈홈피)

- 나이를 초월한 전준호와 이종범의 도루에 대한 열정

 전준호와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국 역사에서 '도루'하면 언제든지 떠오르는 인물들임과 동시에 늘 라이벌로 인식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선수가 도루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93시즌이 유일하다. 

 그럼 두 선수가 '도루'에 있어서 라이벌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프로야구 통산 성적에서 각각 550개와 507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누적 도루 순위 1, 2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될 것이며, 20여년 프로 야구 역사에서 한 시즌 7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단 두 명(이종범 94시즌 84개, 전준호 93시즌 75개)의 선수들이라는 점이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두 선수 모두 꾸준함과 함께 보통의 선수라면 은퇴를 생각해야 할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도루에 대한 열정을 보였고, 또 그것을 실천하였다는 점이 이들을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로 기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종범은 33살이던 03시즌 50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도루왕을 차지한 이후 34살이던 04시즌에도 42개 나 되는 도루를 성공시켰고, 전준호는 35살의 나이었던 04시즌 53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도루왕이 되었다.)



< 마무리 하면서... >

올시즌의 도루왕 경쟁은 누가 승리하게 될지 모른다.
김주찬이 프로야구 인생 처음으로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며, 07년부터 세 시즌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던 이대형이 또다시 도루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몇 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도루에 대한 열정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느냐이다.

그들이 이종범과 전준호의 '대도' 타이틀을 원한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그 열정과 의지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